백기 든 엄마의 본능[4]
정태선 2009/06/02, 11:41:53, HIT : 2333

정태선 교육 에세이 4
  
                                         
                                     또 한번의 문화충격

엄마는 꿈을 펼치고 싶었고, 아이는 심한 문화 충격에 휩싸였다.

     충북 청주에서 작은아이는 2학년에, 큰아이는 4학년에 다녔다. 작은아이는 심리적 부담감으로 열병을 앓았고, 큰아이는 충격을 받고 학교에서 무작정 돌아오기도 하였다.

     미국에서 나는 계속 아이들에게 한국말로 이야기 했다. 이중언어를 지키기 위해서 였다. 그런데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영어의 바다에 빠져 있었기에 모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서 듣기라고 해야 할 것 같아 악착같이 나는 한국말로 했고, 아이들은 악착같이 영어로 대답했었다.
      한국에 돌아와 아이들은 모국어를  못해서 본인 스스로 열병을 앓았다.  읽기를 가르치는 것이 그급선무라 아들에게  4학년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나무'라는 시를 읽어주게 되었다. '나무를 심자, 나무를 심자' 라는 내용이었다. 이 단원은 식목일을 앞두고 배우는 것으로, 6.25를 거쳐 '새마을 운동'을 보고 자란 세대가 보면 단원의 의미가 확 들어온다. 그런데 시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무를 심자'라는 내용이 반복되었다. 이 시를 아들에게 읽어주니 그  반응이 걸작이었다.

      '나무를 심자……. 나무를 심어서 어쩌자는 이야기야? 엄마. 처음부터 끝까지 나무를 심자고 그러는데, 나무를 심어서 어떻게 하려고? 뭐 이런 시가  다 있어?'

      '아, 그래! 의미 없는 글로는 언어를 가르칠 수 없지. 그래 K. Goodman 말이 맞아! 의미 없는 내용으로 아이들을 가르쳐서는 안 돼! 의미 있는 언어활동을 해주어야지.'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우리나라 식목일에 대한 역사를 알려주었다. 그러자 아이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단군신화도 이야기해 주었다. 미국에서 초등학교 3학년 1학기만 마치고 돌아왔지만, 큰아이는 어려서부터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었기에 정신적으로는 어른스런 면이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자 담임 선생님이 <원구는 영어 읽기 실력이 중학교 2학년 정도 입니다. 동양에서온 'Great'입니다.> 라고 해서 칭찬을 해도 너무 과장된 칭찬이라고 생각했었다.
   
      큰아이는 단군신화를 듣자 너무나 신기해했다. 몇 번이고 다시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단군신화 책을 사주고, 역사책도 몇 권 사주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부터 현 대통령까지 쫙 꾀고 있던 큰아이가 나중에 하는 말이 재미있었다.

문화충격이후 내공이 쌓였다.

      " 미국이라는 항아리 속에 살면서 그 항아리가 세계 전체인 줄 알았어.   그런데 어느 날  항아리 속에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보니, 항아리 밖에 더 넓은 세상이 있는 거야. 너무나 신기했어!"

 
        큰 아이는 다른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역사책을 읽어나갔다. 책과 속 깊은 대화를 하는지, 그때부터는 한국말을 속도감 있게 깨쳐 나갔다. 그래서 어려운 사회교과서도 직접 읽어보라고, 다음 날 학교에서 배울 만큼만 영어로 번역을 해서 책갈피에 살짝 끼워 놓곤 했다. 얼마동안 이렇게 해주면서 사회교과서를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다가 한국말의 구조를 익히게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한국말 단어 밑에 영어 단어만 적어 주었다. 이렇게 얼마동안 해주자, 큰아이는 이제 영어 번역이 없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나름 대로 적응해 가고 있을 무렵 학교에서 중간고사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그래도 꼴찌는 아니었다. 꼴찌에서 두번째 였다. 아이의 충격이 너무나 큰 모양이다.  한 달 사이에 체중이 10킬로그램이나 빠졌다. 하루는 학교에 갔다가 선생님께 말씀도 안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공이 쌓인 후에도 여러차례 문화충격을 겪어야 했다.  

    얼굴이 노래져서 돌아왔길래, 아프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왔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침대에 가서 좀 자라고 하고 돌아서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담임선생님의 전화였다. 원구가 학교에서 말없이 사라져서 전화를 하셨단다. 선생님께 말씀도 안 드리고 학교에서 빠져 나온 것이었다. 선생님이 자초지종을 들으시더니, "야단치지 마세요." 하셨다. 말없이 학교에서 빠져 나와 침대에 누워 있는 아이를 보니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누워 있는 큰아이를 꼭 껴안고 미국에 다시 보내주겠다고 했다. 아이는 그제야 엉엉 소리내어 울면서, 미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저녁에 학교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다짜고자 아이를 다시 미국에 보내자고 했다. 그랬더니, 애랑 똑같이 그러면 어떻게 하냐며 아빠는 아이를 앉혀놓고 정색하고 말했다.

     '너는 한국 아이다. 아빠는 미국에서 취직하기 어렵다. 취직이 된다고 해도 미국에 돌아갈 수 없다. 아빠와 엄마는 한국에서 무엇인가 이바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너는 미국인이 아니다. 한국인이다. 여기서 살아야 한다. 엄마 아빠가 최선을 다해 도와주겠다.'
철학자인 아빠는 아이도 철학자인 줄 착각하는 것 같았다. 그날 밤 이혼하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엄청난 부부싸움을 했다.


백기 든 엄마의 본능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신기하게도 큰 아이는 오히려 어제보다 편안한 얼굴로 가방을 챙겨 학교로 갔다. 안심이 되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했다. 한참을 아이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곧바로  문방구로 뛰어갔다. 아마도 문방구에서 책을 파는 나라는 우리 나라 밖에 없을지 모른다. 문방구에서 교과별로 월간 학습지를 두 권씩 샀다. 앞뒤 페이지의 문제를 모두 오려서 쓰려면 같은 학습지가 두 권씩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교과서를 모두 복사했다.

      A4  용지를 반으로 접어서 왼쪽부분에 복사한 교과서내용을 모두 붙였다. 그리고 문제별로 학습지를 모두 오려서, A4종이 오른쪽에 문제를 일일이 붙여 주었다. A4용지 왼쪽에는 교과서 내용을 붙였고, 오른쪽에는 교과서 내용에 해당되는 시험 문제를 붙였던 것이다. 시험문제를 풀려면 교과서의 어느 부분을 읽고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요령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해서 한국식 시험문제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를 깨닫도록 했던 것이다. 당시에 아이의 성적을 올리려면 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한국에 돌아올 때는 좋은 교육과 문화의 씨앗을 뿌려 보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었다. 그러나 막상 한국에 돌아와 어린아이가 힘겹게 등교하는 모습을 보고는, 단 한 순간에 이런저런 생각들을 내 머리 속에서 깨끗이 지워버렸다. 
 
     '너는 미국인이 아니다. 한국인이다. 네가 다 크기 전에는 미국에 절대로 다시 못 간다.'며 어린아이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말을 서슴없이 하던 남편이 미워서였을까? 무조건 아이를 감싸려는 엄마의 동물적인 본능 때문이었을까? 여하튼 교육문화를 바꾸어보겠다는 나의 결심이 단 한순간에 백기를 든 셈이다.

    남편 말 말대로 원구는 미국인이 아니고 한국인이다. 한국인이라면 한국식으로 적응시켜야 마땅할 것이고, 그러려면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는 길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공부를 잘해야 대우를 받으며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 잘하면 만사형통, 공부 못하면 만사불통. 공부만 잘하면 모든 잘못이 용서되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 아닌가?

    이렇게 해서 아들은 드디어 학년말에 반에서 2등을 했다. 한글을 익히지도 않고 한국에 돌아와 일년만에 우등생이 되었던 것이다. 그제야  아들은 한국인으로 당당히 설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아들은 선생님들 사이에서나 학부모들 사이에서 화젯거리가 되었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영웅이 된 셈이다. 어느 누가 이러한 영광을 놓치고 싶겠는가?

공부만 잘 하면 모든 것이 보장되는 우리교육현장

    공부만 잘하면, 무서운 선생님이  사용하는 공포의 회초리나 왕따 잘 시키는 또래아이들의 심술궂은 시선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공부만 잘하면, 누구한테나 적어도 인간적인 대우는 보장받을 수 있다. 아이뿐만이 아니다. 엄마도 덩달아 어깨에 힘을 줄 수 있는 위치로 올라서게 된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아이나 엄마는 모두 이렇게 엄청난 혜택과 권력을 누리게 되는 것이 우리의 교육 현실이다.  내가  너무 심한 말을 하고 있는가? 

   권력을 누린다는 말은 좀 지나친 표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아이의 경우 분명했던 것은, 공부를 잘하면서부터 학교생활의 공포지대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당시에는 매를 드는 선생님들이 종종 있었는데, 그때부터 우리 아이는 더 이상 그런 선생님의 표적이 되지 않았다. 우리 아이는 이제 안전지대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안도감이 우리 아이에게는 매우 중요했다.  그 전에는 학교에서 매를 드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들은 그 후 줄곧 일등을 차지 하면 학교을 다녔다. 세월을 뛰어넘어  아이가 중학교 다닐 때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아이가 하루는 학교에 갔다 왔는데 얼굴이 노려져서 들어왔다. 곧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토한 적이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환경미화 심사를 준비하다가 생긴 일 때문이란다.

     학급 아이들, 어머니들, 그리고 담임선생님이 교실치장을 하느라고 온 정성을 기울였단다. 그런데 옆 반 아이가 놀러와서 장난을 치다가 벽에 걸린 액자를 건드렸다고 한다. 그때 마침 선생님이 보고는 그 아이를 구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뒷부분은 모두 생략하고 싶다. 사실 나는 현장 목격자가 아니니까!  전해들은 아이의 이야기를 모두 사실이라고 책임지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아이가 충격 받은 것은 맞던 아이의 코피가 터진데서 시작했다는 말만 남겨야 할 것 같다. 

     상황을 설명하는 우리 아이의 눈빛은 "도대체 사람이란 무엇인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하고 나에게 질문을 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가만히 들어주기만 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비겁하게도 그저  우리 아이가 그런 비인간적 대우를 받지 않은 것에 안도의 한숨만 지었을 뿐이다.

      안전지대에서 인간적인 대우를 보장받기 위해서라도, 우리 아이는 일등 자리를 놓치지려 하지 않았던 같다. 그 뒤로 우리 아이는 월간 학습지파가 되었다. 일등을 유지하려면, 월간 학습지파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부하다가도 종종 자기 울분을 참지 못해 학습지를 집어던지곤 했다.

요즈음에는  이런 시험 문제 없지요!

     '원구야, 엄마가 너한테 일등을 해야 한다고 요구한 적 없어.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 마! 이제 한국말을 다 익혔으니, 읽고 싶은 책도 읽고 나가서 놀기도 해."
      "엄마, 공부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냐. 엄마, 이 문제 좀 봐 <우리는 한 달에 몇 번 목욕을 합니까?> 엄마는 정답 알아?"
     "정답이 뭐니?"
      "일주일에 한 번이 정답이야.”
실과 교과서에 그렇게 적혀 있으니 그것이 정답이었다.
또 한 번은 학습지를 벽에다가 확 집어던지길래,
     "이번에는 또 어떤 문제가 나왔는데?"
      "여자 속옷 입는 순서를 묻는 문제야. 이런 것이 도대체 문제야?"
한 마디 덧붙이더니 확 나가 버렸다.
      "남자가 오줌 누는 순서를 묻는 문제는 왜 시험에 안 나오는 거야?"
아이는 도저히 화가 나서 견디지 못하겠는지 훌쩍 집밖으로 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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